진소운은 여섯 중 가장 빨리 깨달았다.
이 땅에서 강한 건 칼이 아니라, 그 작고 네모난 패였다.
박순자 할매의 순댓국집에서 사흘. 다섯이 강호의 자존심과 씨름하는 동안, 막내는 이미 시장 골목을 제집처럼 돌고 있었다. 글자를 더듬더듬 읽었고, 사람들이 무엇으로 밥을 사고 어디서 일을 구하는지를 눈으로 훔쳤다. 굶지 않으려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고, 그 누군가가 막내인 것은 강호든 서울이든 변하지 않았다.
"총각, 거 손버릇 사납네."
진소운의 손이 멈췄다. 좌판 위 귤을 슬쩍 소매에 넣으려던 참이었다.
돌아보니 또래쯤 되는 여자 하나가, 한쪽 귀에 작은 물건을 꽂은 채 그를 빤히 보고 있었다. 작고 다부진 체구, 빠르게 굴러가는 눈. 진소운의 무인 감각이 곧장 읽었다 — 이 여자, 기척을 죽일 줄 안다.
무인이었다. 그것도, 시장 할매와 같은 결의.
"……당신도, 그 후예뻘이오?" 진소운이 낮게 물었다.
"어우, 말투 봐." 여자가 픽 웃었다. "사형 사저 하다가 온 티가 줄줄 나네. 그거 여기선 RPG 길드명 같은 거거든요? '정파 도련님'."
*
여자의 이름은 한유나라고 했다.
"낮엔 알바, 밤엔—" 그녀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돈 모양이었다. "정보. 업계에선 '까치'라고 불러요. 소식 물어 나르는 새. 누가 뭘 찾고, 누가 누굴 쫓고, 그런 거 사고팔죠."
"……정보를, 판다고." 진소운의 눈이 반짝였다. 강호에도 개방(丐幇) 같은 정보상은 있었다. 한데 이 여자에게선 거지의 냄새가 아니라, 약삭빠른 장사꾼의 냄새가 났다.
"근데 도련님은—" 한유나가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 강호 복식을 어설프게 현대 옷으로 가린 진소운을. "딱 봐도 그 소문의 '시대착오 떼거지'네. 며칠 전 도심에 시대극 코스프레한 것들이 우르르 떨어졌다고, 업계가 아주 들썩들썩."
진소운의 손이 검으로 갔다.
"어어, 진정. 진정." 한유나가 양손을 들었다. 그러나 그 눈은 전혀 겁먹지 않았다. "나 너희 안 팔아. 아직은. ……근데 솔직히, 너희 지금 패가 하나도 없잖아? 이름도, 돈도, 잘 곳도. 안 그래요?"
정곡이었다. 진소운은 대꾸하지 못했다.
"그게 다 나한테 있다는 게 함정이지." 한유나가 씩 웃으며 제 가슴을 툭 쳤다. "이름과 숫자 만드는 라인, 안 들키고 일하는 자리, 잘 곳. 다 연결해 줄 수 있어. 단—"
"……값이 든다."
"오, 빨라." 한유나가 손뼉을 쳤다. "그래서, 얼마 줄 건데요?"
*
진소운은 그 거래가, 칼을 맞대는 것보다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가진 게 없었다. 돈도, 정보도, 패도. 한유나는 그걸 알면서 협상을 끌었고, 진소운은 그 약삭빠름에 감탄하면서도 이를 갈았다. 강호의 막내로 굴러먹은 그였다. 호락호락 당하진 않았다.
"……당신이 모르는 걸, 내가 팔지." 진소운이 마침내 말했다.
"내가 모르는 거?"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넘어왔는지. 그 '시대착오 떼거지'가 진짜 뭔지." 진소운이 목소리를 낮췄다. "당신 업계가 그렇게 들썩인다며. 그럼 그 진짜 사정은, 값이 꽤 나갈 텐데. 안 그래?"
한유나의 눈이, 처음으로 진지해졌다. 너스레가 잠깐 멎었다.
"……이 도련님, 물건이네."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손을 내밀었다. "좋아. 그쪽 사정 일부랑, 내 라인 일부. 일단 거기서 시작하자. 단, 외상은 안 돼. 정보는 받는 즉시 값을 쳐."
진소운은 그 손을 잡았다. 강호의 막내와 서울의 까치가, 시장 골목에서 첫 거래를 텄다.
*
그날 밤, 순댓국집으로 돌아오는 길.
진소운은 품속 깊이 감춘 것을 잠깐 더듬었다. 손바닥만 한, 검게 그을린 금속 조각. 전이의 순간 본능적으로 챙긴 기보 파편. 귀환의 단서일지 모르는, 여섯 중 누구도 모르는 그의 비밀(fk4).
오늘 한유나에게 판 '사정'에, 그는 이 파편 얘기만은 끝내 넣지 않았다.
막내는 패를 다 보여주지 않는다.
강호에서 배운 단 하나의 생존술이었다. 정파의 막내든, 서울의 떼거지든. 언젠가 일행이 그를 버려도, 혼자 살아남을 패 하나쯤은 숨겨 둬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은 그 패를 숨긴 손이 조금 무거웠다.
"……뭘 그렇게 골똘해, 도련님."
어느새 따라붙은 한유나가, 어깨 너머로 불쑥 끼어들었다. 진소운은 흠칫 파편에서 손을 뗐다.
"……아무것도."
"칫. 비밀 많은 남자, 인기 없어." 한유나가 귤 하나를 까서 반을 툭 건넸다. 아까 진소운이 훔치려던 그 귤이었다. "자. 이건 외상. ……정보값 아니고."
진소운은 그 반쪽 귤을 받아 들고, 잠시 멍해졌다.
값을 안 매긴 호의. 이 약삭빠른 장사꾼이, 처음으로.
"……고맙소." 그가 어색하게 말했다.
"으, 그 말투." 한유나가 진저리를 쳤다. "고치자, 우리. 여기서 그렇게 말하면 사극 찍는 줄 알아."
두 사람은 시장 불빛 아래를 나란히 걸었다. 강호도 서울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을.
— 5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