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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轉移) — 떨어진 자들 · EP1

낙하(落下)

EP1 · 시점 류성하

검이 멈췄다.

류성하의 벽운검(碧雲劍)과 사도혁의 칼이 허공에서 맞물렸다. 십수 년을 끌어 온 정마대전(正魔大戰)의 끝이 이 한 합에 걸려 있었다 — 화경(化境)과 현경(玄境), 반 수의 차이.

그 반 수에 류성하는 평생을 걸었다.

"여기서 끝내지." 사도혁이 웃었다. 죽음 앞에서 가장 즐거워 보이는, 늘 그런 웃음으로.

류성하는 답하지 않았다. 답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입을 여는 그 한순간이 곧 죽음일 만큼, 둘의 무위가 팽팽했기 때문이다. 발밑은 시체였고, 등 뒤는 불타는 정파의 진영이었다.

그리고—

전장 한복판, 정파와 마교가 사력을 다해 빼앗으려던 고대 기보 「현천경(玄天經)」이 울었다.

울었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것은 빛이었고 동시에 소리였으며, 사람의 비명과 닮아 있었다. 누군가 「귀천대진(歸天大陣)」을 잘못 건드린 것이다.

아니.

류성하의 등골이 곤두섰다. 잘못 건드린 게 아니라 — 누군가 일부러 건드린 것 같았다. 그 짧은 직감을 붙들 새도 없이, 세상이 찢어지는 것을 그는 보았다.

하늘이, 땅이, 불길이, 시체가 종이처럼 구겨져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갔다. 사도혁의 얼굴에서 웃음이 처음으로 사라지는 것을, 류성하는 그 찰나에 똑똑히 보았다.

마교 최강조차 예상하지 못한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 빛의 한가운데서, 류성하는 무언가를 보았다.

빨려 드는 세상의 결을 거슬러, 균열의 안쪽에 — 사람의 형상도, 글자도 아닌 무엇이 잠깐 어렸다. 보았다기보다 스쳤다. 붙들려는 순간 그것은 빛에 녹아 사라졌고, 남은 것은 '이것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서늘한 확신 하나뿐이었다.

빛이 그를 삼켰다.

*

깨어났을 때, 류성하는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먼저 놀랐다.

두 번째로 놀란 것은 하늘이었다.

별이 없었다.

검붉은 구름 아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공의 불빛이 지평선까지 깔려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거대한 쇠기둥들이 백색 빛을 토했고, 그 아래로 무언가가 흘렀다. 짐승도 수레도 아닌 것들이 — 두 눈에 새빨간 불을 켜고, 굉음을 내며 강물처럼.

류성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단단한 바닥. 돌도 흙도 아닌, 매끄럽고 차가운 회색. 발밑에는 알 수 없는 글자와 선이 곧게 그어져 있었다. 누가, 무엇 때문에 땅에 이토록 반듯한 선을 긋는단 말인가.

고개를 들자, 하늘을 찌르는 거대한 누각들이 보였다. 돌로 쌓은 것도, 나무로 짠 것도 아니었다. 한 채의 높이가 능히 수십 장, 그 표면 가득 네모난 빛이 벌집처럼 박혀 있었다. 강호의 어떤 세가도, 어떤 황궁도 저렇게 짓지 못한다. 사람의 솜씨라기엔 지나치게 많고, 지나치게 똑같았다.

류성하는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 이 광경을 설명하려 했고, 모조리 실패했다. 환술이라기엔 너무 정교했고, 선계라기엔 너무 차가웠다. 무엇보다 — 환술이든 선계든, 영기가 이렇게까지 메마를 수는 없었다.

여기가 어디인가.

무인의 본능이 먼저 답을 찾으려 했다. 적의 술법인가. 환술인가. 그도 아니면 — 사후의 세계인가.

확인하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류성하는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단전에 침잠해, 천지의 기운을 끌어들였다. 운기조식(運氣調息). 무인이 가장 먼저 익히고 마지막까지 의지하는 것.

그리고 그는, 처음으로, 텅 빈 우물에 두레박을 던진 사람의 기분을 알았다.

기(氣)가, 없었다.

천지에 가득해야 할 영기(靈氣)가 이 세상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메마른 사막에서 물을 찾는 것 같았다. 단전에 남은 내공은 분명 화경의 것이었으나, 그것을 채워 줄 바깥의 기운이 없었다. 쓰면 줄어들기만 하는, 바닥이 들여다보이는 곳간.

류성하는 눈을 떴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화경에 오른 뒤로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두려움.

평생을 검에 바쳐 끝내 닿은 경지였다. 일초에 강기를 싣고, 한 호흡에 십 장을 넘던 몸이었다. 그 모든 것이, 두레박을 채워 줄 우물이 없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무용지물이 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그 손이 아직 자기 것이 맞는지 확인하듯이.

그리고 그 너머, 기억의 가장자리에서 무언가가 자꾸 미끄러졌다. 균열 안쪽에서 스쳤던 그 형상. 떠올리려 할수록 손가락 사이 물처럼 빠져나갔다. 분명 보았는데, 무엇을 보았는지 말할 수 없었다. 무인의 기억은 검로(劍路) 하나 놓치지 않는데 — 그 한 조각만은, 누가 일부러 지운 것처럼 비어 있었다.

"……제법인데."

목소리가 그를 돌려세웠다.

열 걸음쯤 떨어진 곳에, 사도혁이 서 있었다.

마교 소교주 역시 그 매끄러운 회색 바닥에 한쪽 무릎을 짚은 채, 제 손바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류성하는 안다. 방금 자기 자신이 지었던 표정과 똑같았으니까.

"너도 못 끌어 쓰는군." 사도혁이 천천히 일어섰다. "이 빌어먹을 땅엔 기가 없어."

그러니까, 적도 약해졌다는 뜻이었다.

류성하의 손이 벽운검의 손잡이로 갔다.

지금이라면. 반 수의 차이가 무의미해진 지금이라면 — 평생 메우지 못한 그 반 수를, 저자가 똑같이 잃어버린 지금이라면. 벨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십수 년을 기다린 한 수였다.

"해 보겠나." 사도혁이 그 손을 보고 말했다. 칼자루에 손도 대지 않은 채였다. "둘 다 우물 바닥을 긁는 처지에. 누가 먼저 내공을 다 쓰고 쓰러지나 내기라도 할까, 청천검(靑天劍)."

류성하는 그 별호가 제 입으로 불리는 것을 오래 듣지 못했다. 강호에서 그를 그렇게 부르던 자들은 대개 죽었거나, 지금 등 뒤 불길 속에 있었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가, 풀렸다.

벨 수 있을지도 모른다 — 그 '모른다'가 문제였다. 여기가 어디인지조차 모르는 땅에서, 마지막 남은 내공을 숙적 하나에 쏟아붓는 것은 무인의 셈이 아니었다.

그가 검을 놓는 것을 보고, 사도혁이 피식 웃었다.

"역시 재미없는 놈."

"……너야말로 칼을 뽑지 않았다." 류성하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혈수라(血修羅)답지 않게."

사도혁은 대답 대신, 류성하의 어깨 너머를 응시하고 있었다. 불빛이 강처럼 흐르는 거대한 도시를. 그 눈은 적을 보는 눈이 아니라, 처음 보는 사냥터를 가늠하는 맹수의 눈이었다.

"……류성하." 마교 소교주가 낮게 말했다. 십수 년 숙적의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엔, 이상하게도 살기가 없었다. "우리 둘만 떨어진 게 아니다."

류성하는 그제야 깨달았다.

어둠 속, 흩어진 그림자들. 무너진 구조물의 잔해 사이로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멀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무인은 기척으로 사람을 읽는다.

정파의 백서린(白瑞潾). 그 곧은 의기(醫氣)를 류성하는 안다. 그 곁에 또 하나, 가벼운 기척 — 막내 진소운(陳少雲)이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 한층 짙고 끈적한 살기 둘. 마교의 여월(呂月)과 곽철(郭哲).

정(正)도 마(魔)도, 같은 빛에 삼켜져 같은 곳에 떨어졌다. 서로를 향해 다가가지도, 등을 보이지도 못한 채 — 각자 선 자리에서 굳어 있었다. 누구 하나 이곳이 어디인지 모르는 까닭이었다.

여섯.

류성하는 그 수를 셌다. 정파 셋, 마교 셋. 정마대전의 양 끝이 한 줌으로 줄어, 별도 없는 하늘 아래 나란히 떨어져 있었다.

…아니.

다시 등골이 곤두섰다. 이번엔 두려움이 아니라, 더 오래된 무인의 직감이었다.

여섯이 아니다.

저 멀리, 도시의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 누군가가 일곱 번째로 일어서고 있었다.

류성하는 그쪽으로 기감을 뻗었다. 그리고 곧바로 거두었다. 거두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기(氣) 없는 세상에서, 그 그림자만이 조금도 약해 보이지 않았다.

여섯의 고수가 텅 빈 우물 앞에 무릎 꿇은 이 땅에서, 오직 그 하나만이 멀쩡히 서 있었다. 아니, 멀쩡한 정도가 아니었다. 그 기척은 — 강호에서도 본 적 없는 종류로 — 차갑고,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이 메마른 세상 어딘가에서 혼자만 우물을 찾아낸 것처럼.

그림자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여섯 쪽은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도시의 반대편, 불빛이 죽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치 처음부터 거기가 제집이었다는 듯이.

"……저건 누구지." 류성하가 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곁눈으로 보니, 사도혁의 얼굴에서도 그 여유로운 웃음이 걷혀 있었다. 마교 최강이, 일곱 번째 그림자가 사라진 어둠을 응시한 채 — 처음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가 무언가 알고 있다. 류성하는 직감했다. 종막의 그 빛 속에서, 자신이 미처 보지 못한 무언가를 저자는 보았다.

물으려는 순간이었다.

회색 바닥 저편에서, 한 줄기 강렬한 빛이 두 사람을 정면으로 쏘았다.

류성하는 반사적으로 검을 끌어당겼다. 빛이 너무 곧고, 너무 밝았다. 사람이 든 등불이 아니었다. 굉음과 함께 쇠수레 하나가 두 사람 앞에 멈춰 섰다. 옆구리에 붉고 푸른 빛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 안에서 낯선 복장의 사내가 내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같은 빛깔의 옷. 허리에는 처음 보는 기물들이 줄지어 매달려 있었다. 사내의 손에는 작고 검은 물건이 들렸고, 그것을 두 사람에게 똑바로 겨눈 채 무어라 외쳤다. 말의 뼈대는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빠르게 굴리는 억양과 그 사이사이 섞여 드는 낯선 낱말들 탓에 뜻을 잡을 수 없었다. 다만 그 분명한 적의와 경계만은 어떤 말로도 통했다.

강호의 율법이라면, 답은 정해져 있었다. 무기를 겨눈 자에겐 무기로 답한다.

류성하의 손이 벽운검을 반쯤 뽑았다. 차가운 쇳빛이 그 낯선 불빛을 받아 번뜩였다.

그리고 사도혁이, 그 손목을 붙잡았다.

"뽑지 마."

마교 소교주가 이를 악물고 속삭였다. 손아귀의 힘이, 적을 제압할 때의 그것이었다.

"여기선… 우리가 뭘 모르는지조차 모른다."

낯선 사내가 다시 외쳤다. 검은 물건을 쥔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류성하는 반쯤 뽑은 검을 든 채, 처음으로 깨달았다.

— 살아남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는 것을.

— 2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