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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轉移) — 떨어진 자들 · EP5

마패의 규칙

EP5 · 시점 류성하

남자는, 손해 보러 온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순댓국집 평상에 마주 앉은 그 사내는 마흔 어름, 반백의 짧은 머리에 늘 반쯤 감긴 듯 피곤한 눈을 하고 있었다. 목에는 무슨 사원증을 걸었고, 손에는 식어 가는 국밥. 어느 모로 봐도, 야근에 절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류성하만이, 그 사내에게서 다른 것을 읽었다.

손가락 마디의 굳은살. 끈을 다루는 자의 것. 그리고 그 처진 어깨 아래, 군더더기 없이 정돈된 절정 무인의 균형. 위장이 완벽할수록, 무인은 무인을 알아본다.

"……순자 누님." 사내가 박순자를 향해 국밥을 한 술 뜨며 말했다. 빈정대는 끝이 길게 늘어졌다. "또 사고 치셨네. 시대극 떼거지를 여섯이나 거두셨다며? 내가 이걸 회합에 뭐라고 보고해. '순대국밥집에서 화경 한 마리 키웁니다'?"

"끌끌, 차 집행관." 박순자가 국솥을 휘저으며 능청을 떨었다. "굶는 애들 거둔 게 무슨 사고여. 국밥이나 먹고 가."

"굶는 애들이라." 차도현이 류성하를 똑바로 보았다. 그 순간, 빈정의 끝이 뚝 끊겼다. 피곤한 눈이 칼처럼 식었다. "댁이 우두머리요? 화경?"

*

류성하는 답하지 않았다. 답이 곧 정체의 노출이었다.

"답 안 해도 돼." 차도현이 국밥 그릇을 내려놓았다. "기척 죽이는 게 영 서툴거든, 댁들. 이 도시 어디에 떨어졌고, 며칠간 무슨 사고를 쳤는지 — 나는 다 알아. 새벽 도심 칼자국. 총성 신고. 코스프레 강도떼. ……댁들, 사흘 만에 형사 하나 꼬리에 붙였어. 알아?"

윤재경. 류성하의 등골이 곤두섰다. 그 골목 입구의 사내를, 이자는 알고 있었다.

"여기 규칙 하나 가르쳐 주지." 차도현이 천천히 일어섰다. "이 땅에서 무(武)는, 들키는 순간 끝이야. 관헌이 잡아가고, 언론이 떠들고, 뒷세계가 노린다. 그럼 댁들만 죽나? 아니. 수백 년을 숨어 산 우리까지 다 들춰져. 댁들 화려한 칼부림 한 번에, 국밥 마는 이 할매까지 우리에 갇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류성하가 물었다.

"노출하면, 우리가 먼저 친다." 차도현의 목소리가 짧고 차가워졌다. "관헌보다 먼저. 회합의 이름으로. ……이게 마패의 규칙이야."

그러고는, 차도현이 손가락을 까딱했다.

류성하는 그 손끝의 가느다란 검은 끈을 보지 못했다. 위장한 이어폰 줄이라 여겼던 그것이, 한순간 내공을 머금고 살아 움직였다. 채찍처럼 뻗어 평상 위 류성하의 젓가락을 휘감아 챘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현사박(玄絲縛). 노출 없이, 소리 없이, 제압하는 끈.

류성하의 손이 검으로 갔다.

"뽑지 마." 차도현이 식은 눈으로 말했다. 사도혁이 며칠 전 했던 것과 똑같은 말을. 다른 뜻으로. "여기서 그 시퍼런 거 뽑으면, 내가 댁을 회합 규칙 위반으로 단속해야 돼. 둘 다 피곤해져. ……그냥, 조용히 살아. 그게 댁들이 살길이야."

*

류성하는 검을 놓지 않은 채, 그 사내를 응시했다.

"……당신은." 류성하가 낮게 말했다. "그게 협이라 믿소? 숨고, 못 본 척하고, 약한 자가 짓밟혀도 들킬까 봐 손 놓는 것이?"

차도현의 빈정이, 그 말에 잠깐 멎었다.

"협." 그가 그 단어를 입에 굴렸다. 다 식은 음식 씹듯이. "거창하네, 대협 나리. 여기 2026년이거든? 영웅놀이가 사람 잡는 시대야. 협 부리다 들킨 놈들이 어떻게 됐는지, 나는 너무 많이 봤어." 그 눈에, 한순간 류성하가 알아본 것이 스쳤다. 회한. 지키지 못한 누군가의 그림자. "……들키지 않는 게, 여기선 협이야. 그거 하나 못 지키면, 댁이 지키려는 것들부터 죽어."

류성하는 그 말에 대꾸할 수 없었다.

며칠 전, 그는 악인을 살려 보냈었다. 베면 모두가 죽으니까. 협을 행하는 것이 곧 자멸인 땅. 차도현의 냉소는, 류성하 자신이 이미 몸으로 배운 그 율법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게 류성하를 더 불편하게 했다.

"차 집행관." 박순자가 끼어들었다. 능청을 거두고, 노고수의 무게로. "이 애들, 내가 봤어. 협을 곧이곧대로 사는 칼잡이 총각이야. 그게 위험한 거, 나도 알아. 근데—" 그녀가 차도현을 똑바로 보았다. "너도 한때 저랬잖아. 식기 전에는."

차도현의 어깨가, 잠깐 굳었다.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검은 끈을 거두고, 식은 국밥값을 평상에 놓았다. 돌아서기 전, 류성하를 향해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한 달." 그가 말했다. "한 달 안에 사고 한 번 더 치면, 그땐 단속이야. 봐주는 거, 이번이 마지막이고. ……순자 누님 얼굴 봐서."

그리고 그 피곤한 직장인은, 인파 속으로 흔적도 없이 녹아들었다. 잠행보. 노출 없이 사라지는 법까지, 이 땅의 무인들은 알고 있었다.

*

평상에 남은 류성하는, 휘감겼던 젓가락을 들여다보았다.

저자의 무위는 자신에 한참 못 미쳤다. 정면으로 붙으면, 류성하의 한 수에 끝날 상대였다. 그런데 그 한 수를, 류성하는 이 땅에서 쓸 수 없었다. 저자가 쥔 것은 무위가 아니라 규칙이었고, 이 땅에서는 그 규칙이 화경보다 강했다.

"……할머니." 류성하가 물었다. "저 사람, 왜 우릴 살려 뒀소. 단속할 수 있었을 텐데."

박순자가 한숨을 쉬며 평상에 걸터앉았다.

"저 녀석도, 식은 척하는 거여." 그녀가 차도현이 사라진 골목을 보며 말했다. "한때 누구보다 뜨겁던 놈이야. 지키려다 못 지켜서, 저렇게 얼었지. ……너희 칼잡이 총각 보면서, 속이 좀 긁혔을 거다. 잊으려던 걸 자꾸 떠올리게 하니까."

류성하는 그 말을 곱씹었다.

이 땅에는 협을 비웃는 무인이 있었다. 그리고 그 비웃음 밑에, 한때 협이었던 자의 회한이 식어 있었다. 류성하가 가려는 길의 끝에, 어쩌면 저 사내가 서 있을지도 몰랐다.

나도, 언젠가 식을까.

그 물음이, 차도현의 검은 끈보다 오래 그를 휘감았다.

— 6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