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술이 빗나간 밤, 여월은 잠들지 못했다.
배가 고픈 것은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의 몸 안에 든 그것이었다.
미혼고(媚魂蠱). 혈천교가 어린 그녀의 몸에 길러 넣은 고독(蠱). 향과 독과 매혹의 근원이자, 그녀를 도구로 만든 사슬. 그것은 천지의 영기를 먹고 산다. 강호에선 굶을 일이 없었다. 천지에 영기가 가득했으니까.
이 땅엔 영기가 없었다.
그래서 미혼고가 굶주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굶주린 고독은, 먹을 것이 없으면 제 숙주를 먹는다. 여월의 정기를, 그녀의 생명을, 조금씩.
여월은 명치 아래를 가만히 눌렀다. 그곳에서 그것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배고픈 짐승처럼. 며칠은 버틸 것이다. 열흘은… 모르겠다. 그 후엔, 그녀가 마르기 시작할 것이다. 안에서부터.
우습지.
평생 남의 마음을 먹이로 삼아 살았는데, 끝내 저를 먹는 것이 제 안에 있었으니.
*
새벽, 사도혁이 그녀를 불렀다.
마교 소교주는 고가 기둥에 등을 기댄 채, 도시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여월은 그 앞에 무릎을 굽혔다. 십수 년을 그래 왔듯이. 소교주의 그림자 안에 서는 것이, 그녀가 아는 유일한 안전이었다.
"통하지 않았더군." 사도혁이 류성하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네 술법이."
"……송구합니다." 여월은 고개를 숙였다. 도구가 쓸모를 증명하지 못했을 때의 두려움이,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혈천교에서 쓸모없는 도구의 끝을 그녀는 보아 왔다. "심지가 유독 굳은 자입니다. 영기만 충분했다면—"
"변명은 됐다." 사도혁의 목소리엔 화가 없었다. 화조차 아까워하는 자였다. "통하지 않는 건 통하지 않는 거지. ……오히려 흥미롭군. 류성하에게 안 통한다는 건, 그자가 네 술수 없이도 제 발로 우리와 손잡을지 말지를 진짜로 정한다는 뜻이니."
여월은 고개를 들었다. 소교주는 벌써 그 빗나간 술법조차 제 판의 말로 셈하고 있었다.
"앞으로 그자를 다루는 건 술법이 아니다." 사도혁이 말했다. "쓸모다. 우리가 저쪽에 쓸모 있는 한, 저쪽도 칼을 못 뽑아. 너도—" 그 시선이 처음으로 여월에게 똑바로 닿았다. "쓸모를 찾아라. 술법이 안 되면, 다른 걸로."
다른 걸로.
여월은 그 말의 무게를 안다. 혈천교에서 그 말은 늘 한 가지를 뜻했다. 몸이든 정보든 사람이든, 가진 걸 팔아 자리를 사라는 것.
"……예." 그녀가 답했다.
그게 그녀가 아는 유일한 대답이었다. 열두 살에 처음 배운, 마지막까지 배우지 못한 다른 대답.
*
해가 완전히 떠오르자, 마교 셋은 정파 셋과 조금 떨어진 폐건물 처마 밑으로 자리를 옮겼다.
곽철이 어디선가 주워 온 것들을 늘어놓았다. 버려진 천 쪼가리, 끈, 그리고 사람들이 길에 버린 알 수 없는 그릇들. 살수는 그것들을 자랑스레 내밀었다. 칭찬을 기다리는 짐승처럼.
"……곽철." 여월이 한숨을 쉬며 그 머리를 가볍게 헝클었다. "쓰레기를 주워 오면 어떡해."
"먹을 건 줄 알았어." 곽철이 시무룩하게 답했다. "냄새가 났는데."
여월은 그 단순함이 가끔 부러웠다. 곽철은 도구로 길러졌으되, 도구인 줄을 모르는 채로 컸다. 그래서 충성을 의심하지 않았고, 그래서 외롭지 않았다. 여월은 도구인 줄을 너무 일찍 알아 버렸다.
그녀가 아는 한, 도구가 살아남는 법은 하나뿐이었다.
먼저 정을 주지 마라.
준 정만큼 빼앗기고, 빼앗긴 만큼 약점이 된다. 여월은 그 법을 어겨 본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아주 오래전, 혈천교에 들어오기 전. 그 끝에 무엇이 남았는지는—
여월은 거기서 생각을 끊었다. 떠올리면 미혼고가 더 굶주렸다. 감정은 그것의 먹이이기도 했으니까.
대신 그녀는 폐건물 너머, 정파 셋이 모여 앉은 그늘을 보았다.
류성하가 거기 있었다. 검을 천에 싼 채, 막내에게 무어라 낮게 이르고 있었다. 그 곧은 등이, 햇빛 속에서 유독 또렷했다.
미혼술이 통하지 않는 사내.
여월은 그 사실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통하지 않는다는 건, 그녀가 그 앞에서 맨얼굴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가면이 소용없는 상대. 평생 가면으로 살아온 그녀에게 그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두려운 만큼, 이상하게도 자꾸 눈이 갔다.
"……가면을 벗고 오라고 했지." 그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류성하가 어제 한 말이었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도 모르면서."
명치 아래에서 미혼고가 또 한 번 꿈틀거렸다. 여월은 눈을 감았다.
살아남아야 했다.
소교주의 그림자 안에서, 미혼고가 저를 다 먹어 치우기 전에, 이 영기 없는 땅에서. 그러려면 셈을 해야 했다. 도구의 셈을. 무엇을 팔고, 무엇을 쥐고, 누구에게 붙을지를.
그 셈의 한구석에 류성하의 곧은 등이 자꾸 끼어든다는 것을, 여월은 애써 모른 척했다.
— 5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