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사람은 둘로 나뉘었다.
이름과 숫자를 가진 자, 갖지 못한 자.
류성하는 사흘 만에 그것을 배웠다. 점포에서 무언가를 사려 해도, 어딘가에 들어가려 해도, 사람들은 먼저 작은 패를 요구했다. 그 패에 적힌 이름과 숫자가 곧 그 사람이었다. 패가 없으면, 이 땅에서 그는 사람이 아니라 유령이었다.
여섯의 유령은 굶주리고 있었다.
"방법이 있습니다." 진소운이 말했다. 막내는 사흘 동안 이 도시를 가장 빨리 읽어 냈다. "이름과 숫자도… 사고팔더군요. 뒷골목에서. 다만—"
"다만, 돈이 든다." 사도혁이 말을 받았다.
"예. 그리고 그 거래를 하는 자들은—" 진소운이 잠시 망설였다. "어제 우리를 덮친 그 무뢰배들과, 한패입니다."
류성하의 미간이 좁아졌다. 어제 자신을 죽이려 한 자들의 소굴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 그들에게 이름을 산다. 강호의 율법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원수와는 거래하지 않는다.
"……그건 안 된다." 류성하가 말했다. "그자들은 사람을 해치는 무리다. 그런 자들과—"
"대협." 사도혁이 그의 말을 잘랐다. 그 목소리는 차갑고, 즐거웠다. "여기서 협을 논할 셈인가. 이름도 없는 유령이."
류성하는 입을 다물었다.
"이 땅의 율법을 내가 읽어 주지." 사도혁이 도시를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마치 그것이 이미 제 것이라는 듯이. "여긴 무공이 아니라 이름과 숫자가 힘이야. 그 둘을 쥔 자가 약한 자를 먹는다. 우리가 약자로 남으면, 어제 같은 일이 매일 벌어져. ……그러니 먼저, 이름과 숫자를 쥔다. 수단은 가리지 않고."
*
류성하는 그날, 사도혁이 일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뒷골목 소굴에서, 마교 소교주는 검 한 번 뽑지 않고 그 무리의 우두머리를 가렸다. 누가 진짜 힘을 쥐었는지, 누가 겁쟁이인지, 누구를 누르면 나머지가 따라오는지 — 사람을 읽는 그 눈은 강호에서나 이 땅에서나 똑같이 매서웠다. 곽철이 한 번 살기를 흘리는 것으로 충분했다. 우두머리는 곧 식은땀을 흘리며 협상에 응했다.
이름과 숫자가 손에 들어왔다. 위조된 패 여섯 장. 그리고 약간의 이 땅의 돈이.
그 돈의 출처를, 류성하는 끝내 묻지 못했다. 사도혁이 그 우두머리에게서 무엇을 받아 냈는지, 대신 무엇을 약속했는지 — 그 거래의 안쪽은 마교 소교주의 머릿속에만 있었다.
다만 류성하는 보았다.
거래가 끝날 무렵, 사도혁이 그 뒷골목 우두머리를 보는 눈을. 그것은 협상을 끝낸 자의 눈이 아니라, 첫 번째 말을 둔 자의 눈이었다. 이 도시의 어둠에, 그가 막 첫 수를 둔 것이다. 어제까지 유령이던 자가, 오늘 벌써 이 땅의 뒷면에 제 손가락 하나를 걸쳤다.
'협력'이라고 사도혁은 말했었다. 여섯이 살아남기 위한 협력.
류성하는 그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저자는 살아남으려는 게 아니다. 저자는—
가지려는 것이다.
강호를 삼키려던 그 야망을, 이 새로운 땅에 그대로 옮겨 심고 있었다. 영기도 검도 잃은 이 땅에서, 사도혁은 오히려 제게 맞는 사냥터를 찾은 맹수처럼 눈을 빛냈다. 무공이 힘인 강호에선 류성하라는 벽이 있었다. 이름과 숫자가 힘인 이곳엔—
아직, 벽이 없었다.
류성하는 천에 싼 검을 고쳐 쥐었다.
이 동맹이 언젠가 깨질 것을, 그는 그날 알았다. 지금은 함께 살아남는다. 그러나 살아남고 나면, 사도혁의 야망과 자신의 협은 반드시 부딪칠 것이었다. 그게 강호에서든, 서울에서든.
"……무슨 생각을 그리 하나, 청천검." 사도혁이 위조된 패 한 장을 류성하에게 던지듯 건넸다. 거기엔 낯선 이름과 숫자가, 류성하의 얼굴과 함께 박혀 있었다. 가짜 이름. 가짜 사람. "오늘부터 네 이름이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게 이 땅에서 네가 사람인 증표야."
류성하는 그 패를 받아 들었다.
제 것이 아닌 이름을 손에 쥐고서, 그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 땅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류성하라는 이름을 잠시 내려놓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검을 숨기고, 이름을 숨기고, 협마저 숨기고.
그렇게라도, 살아남아야 했다.
"……고맙다는 말은 안 하겠다." 류성하가 패를 갈무리하며 말했다.
"바라지도 않았어." 사도혁이 웃었다. "대신 빚으로 달아 두지. ……너희 정파는 빚을 잘 갚으니까."
빚.
류성하는 어제 여월에게 진 빚을 떠올렸다. 그리고 오늘 사도혁에게 진 빚을. 이 땅에서 그는 적들에게 둘러싸인 채, 그 적들에게 목숨과 이름을 빚지고 있었다.
강호의 율법대로라면, 빚은 갚아야 했다.
그러나 이 빚들을 다 갚고 나면, 그때 자신은 — 누구의 편에 서 있을 것인가. 류성하는 처음으로, 그 답을 자신할 수 없었다.
— 7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