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철은 사흘째 앓았다.
광화(狂化)를 강제로 냉각당한 대가였다. 백서린은 그 부작용을 안다. 폭주한 마기를 억지로 가라앉히면, 그 기운이 갈 곳을 잃고 경맥을 거슬러 돌며 심신을 상한다. 주화입마(走火入魔)의 문턱(c9). 영기가 마른 이 땅에서는 그 회복마저 더뎠다.
낡은 방 한구석, 백서린은 곽철의 맥문에 손가락을 얹었다.
마교의 살수. 강호였다면, 그녀가 평생 검을 겨눴을 자. 그 손목 위에서 백서린의 손가락이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맥의 결을, 기의 흐름을, 막힌 곳과 역류하는 곳을 읽었다.
"……심하네." 그녀가 낮게 말했다. "이대로 두면 폐인이 돼."
"……그냥 둬." 곽철이 식은땀에 젖은 얼굴로 신음했다. 열에 들떠 있었다. "정파 계집한테… 살려 달라고 한 적 없어."
"환자가 의원을 고르는 거 봤니." 백서린은 대꾸하며 은침을 꺼냈다. "나는 환자를 안 골라."
*
이것이 백서린이 평생 지켜 온 한 가지였다.
의원은 환자의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
정파의 의각(醫閣)에 있을 때도 그녀는 그렇게 믿었고, 그 믿음 때문에 몇 번이고 곤경에 처했다. 마교도를 살렸다는 이유로 문책당했고, 적의 부상을 돌봤다는 이유로 의심받았다. 그래도 그녀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가 없었다.
한 번, 멈춘 적이 있었으니까.
오래전, 정마대전의 어느 전장에서. 진영의 명령이 그녀의 손을 묶었던 그날. 살릴 수 있었던 한 사람을, 그녀는 진영 때문에 살리지 못했다. 그 얼굴을 백서린은 아직도 꿈에서 본다. 그날 이후 그녀의 의술은 속죄가 되었다. 다시는, 진영 때문에 손을 멈추지 않겠다는(fk16).
곽철의 경맥에 침이 박혔다. 역류하던 마기가 천천히 제 길을 찾기 시작했다. 살수의 일그러졌던 얼굴이 조금씩 풀렸다.
"……이상하네." 백서린이 침을 놓으며 중얼거렸다. "광화라는 거. 쓸 때마다 네 수명을 깎고 있어. 알고 있니?"
곽철의 눈이 흔들렸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사도혁에게도, 자신에게도. 백서린은 그 흔들림에서 답을 읽었다(fk18). 이 단순한 살수는, 제가 칼을 휘두를 때마다 조금씩 죽어 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소교주를 위해 그 칼을 멈추지 못하는 것이다.
백서린의 가슴 한구석이 시큰했다.
"……멈추는 법을 찾아 줄게." 그녀가 저도 모르게 말했다. 적에게 할 말이 아니었다. "광화 말고도, 너를 지킬 방법이."
곽철이 그녀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짐승으로 길러진 자에게, 누군가 '너를 지키겠다'고 말한 것은 처음이었다.
*
그 광경을, 사도혁이 보고 있었다.
마교 소교주는 방 모서리에 앉아, 제 칼(곽철)을 정파의 의원이 살리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백서린은 그 시선을 등으로 느꼈다. 무겁고, 서늘하고, 무언가를 셈하는 시선.
곽철의 처치를 끝내고, 백서린이 일어섰다. 그러다 사도혁과 눈이 마주쳤다.
그 짧은 순간, 의원의 눈이 본능적으로 그를 진맥했다.
맥을 짚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보았을 뿐이다. 안색, 호흡, 미세한 기색, 눈 밑의 그늘, 손끝의 떨림 — 의가에서 나고 자란 백서린의 눈은, 손을 대지 않고도 사람의 몸을 읽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다.
사도혁의 몸 어딘가가, 무너지고 있었다.
현경(玄境)의 최강자. 6인 중 가장 강한 자. 그런데 그 몸의 깊은 곳에서, 백서린의 눈에만 보이는 균열이 자라고 있었다. 차원이동의 후유증인지, 영기 희박이 그 거대한 내공에 일으킨 무언가인지 — 아직은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했다. 마교 최강이, 스스로도 다 자각하지 못한 채 병들어 가고 있었다(c37, fk15).
백서린은 그 발견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것은 위험한 정보였다. 권력의 균형을 흔들 수 있는. 사도혁의 약점을, 지금 이 방에서 오직 그녀만 알았다.
"……무얼 봤지." 사도혁이 낮게 물었다. 의원의 눈빛이 달라진 것을, 맹수는 놓치지 않았다.
백서린은 표정을 지웠다. 맥문을 짚을 때의 그 무심한 얼굴로.
"……곽철은 며칠 더 안정이 필요해요." 그녀가 화제를 돌렸다. "광화를 또 쓰면, 다음엔 못 살려요."
사도혁은 그녀를 오래 응시했다. 무언가를 숨겼다는 걸 아는 눈이었다. 그러나 그는 캐묻지 않았다. 대신 입가에 옅은, 위험한 호선을 그렸다.
"……유능한 의원이군." 그가 말했다. "곁에 두면, 오래 살겠어."
그 말에 담긴 이중의 뜻을, 백서린은 알아들었다.
너를 곁에 두겠다는 것은, 너를 감시하겠다는 것. 네가 무얼 봤든, 그것을 함부로 발설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 의원과 환자, 칼을 쥔 자와 약점을 쥔 자 — 두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팽팽한 실 하나가, 그날 처음 걸렸다.
*
그날 밤, 백서린은 잠든 곽철의 맥을 다시 짚으며 생각했다.
이 좁은 방 안에서, 그녀는 마교의 살수를 살렸고, 마교 최강의 비밀을 알아 버렸다. 정파의 의원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들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후회하지 않았다.
생명 앞에서 진영을 매기지 않는다.
그것이 그녀가 이 영기 없는 땅에서도 놓지 않을 단 하나의 검(劍)이자 침(針)이었다. 정파든 마교든, 그녀의 손이 닿는 한 살린다. 그 손이 언젠가 그녀를 가장 위험한 곳으로 데려가리라는 것을, 백서린은 어렴풋이 알면서도.
곽철의 숨이 고르게 돌아왔다. 백서린은 가만히 그 이마의 땀을 닦아 주었다.
살리는 손이었다.
이 땅에서 가장 위험한, 그리고 가장 필요한.
— 12화에서 계속